교회사학, Vol.13 (2016)
pp.101~127

개화기 진산 지역 신앙공동체의 재건과 변화

방상근

(내포교회사연구소 연구위원)

진산 지역이 한국천주교회사에서 주목받는 이유는, 진산 사건의 발생지이자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과 권상연이 나고 자란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산은 진산 사건만으로 의미있는 지역이 아니다. 이곳은 박해시대 이래 신자들이 신앙을 지키며 살았던 삶의 터전이며, 오늘날까지 신앙이 유지되는 곳이다. 따라서 진산 지역의 신앙사는 진산 사건뿐만 아니라 진산에 살았던 신자들의 모습이 아울러 밝혀질 때, 온전한 모습이 드러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글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준비되었으며, 특히 개화기(1876~1910)에 진행된 신앙공동체의 변화 모습을 정리해 보는 것이 목적이다. 진산 지역의 신앙공동체는 1787년경에 형성되었다. 그러다가 1791년 진산 사건이 발생하면서 윤지충과 권상연이 순교하였다. 진산 사건 이후 이곳의 신앙공동체는 더 이상 기록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다가 신유박해 이후 기해박해 이전의 시기에 다시 등장하며, 가새벌, 문바위, 진밭들, 청림, 오항골 등이 신자들의 거주지였다. 그러나 이러한 신앙공동체도 병인박해로 와해되었다. 전라도에 대한 전교는 1877년 블랑 신부에 의해 재개되었고, 이즈음 진산의 가새벌 공소가 복구되었다. 그리고 〈1884~1885년 교세 통계표〉 에 진산 지역의 공소가 처음으로 기록된다. 이후 1910년까지 진산 지역은 6명의 성직자가 담당했는데, 이 기간 동안 진산의 신앙공동체는 “재건 → 발전 → 확대 → 시련 재편” 이라는 변화를 보여 주었다. 재건기는 조스 신부, 발전기는 보두네 신부, 확대기는 비에모 신부, 시련 재편기는 미알롱 신부가 활동하던 시기이며, 우도 신부와 베르몽 신부의 사목 시기는 이전 시기의 상태가 그대로 유지되던 때였다. ‘개화기 진산 지역의 신앙공동체’는 다양한 변화 과정을 겪었다. 그러면서 1902~1903년에 북쪽의 가새벌 공소와 남쪽의 안지렁이·개직이 공소라는 양대 체제로 재편되었고, 이 체제가 1910년까지 이어지는 흐름 속에 있었다.

Reconstruction and change of community of faith in Jinsan District during the Enlightenment period

Bang, Sang-k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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