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2024년 8월호
작성자 : 관리자 등록일시 : 2024-08-07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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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교우서

2024년 8월호(통권 111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가 안성 천주교회를 통해 확장되다

- 안성성당과 수원교회사연구소에서 펴낸 ‘안성 자료집’(전 2책) 소개 -
 

2024년 7월 5일 천주교수원교구 안성성당과 수원교회사연구소에서는 ‘안성 자료집’(전 2책)을 간행했습니다. 이번에 간행한 ‘안성 자료집’은 제1책 ‘안성본당 자료집’과 제2책 ‘공베르 안토니오 신부 자료집’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2책 모두 신국판 판형으로 제1책은 552쪽, 제2책은 560쪽 분량입니다.

▣ 『안성 자료집』을 펴내며 (편찬사 - 수원교회사연구소 소장신부 정종득 바오로 신부)
1900년 공베르 안토니오(Antoine Gombert, 孔安國) 신부가 안성 지역에 정착하고 1901년에 ‘안성본당’이 공식 설립되면서 안성본당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설립 초기 안성본당은 신자가 거의 없는 도심지에 위치했고 주변 공소도 상당히 떨어져 있었습니다. 열악한 조건 아래 적지 않은 난관에 부딪혔지만, 착실하게 복음 전파와 교세 확장에 매진했습니다.
초대 주임 공베르 신부는 급변하는 시대적 상황에서 학교 교육을 통한 전교 계획을 구상했습니다. 이후 지역 주민의 요구와 교구의 지원금을 바탕으로 1909년 1월 안법학교(安法學校, 현재 안법고등학교의 전신)를 개교하면서 안성 지역 근대 교육의 담당자라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신자가 거의 없는 도심지에 신설된 안성본당은 30여 년간 사목을 한 공베르 신부의 노력으로 일제 강점기 동안 눈부신 발전을 한 본당이 되었습니다. 지역사회와 협조하면서 교육과 사회사업을 전개해 나갔고 안성 지역 교회발전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공베르 신부의 뒤를 이은 본당 주임 신부들도 지속적으로 본당을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이와 같이 안성본당은 2024년 현재 12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유서 깊은 천주교회 신앙공동체이자 개항기·일제강점기·현대시기의 격변기를 한국 및 안성지역 주민들과 함께 해온 한국사회의 구성원입니다. 120년이 넘은 시간 동안 안성본당은 안성 지역에 천주교를 뿌리내리게 하면서 안성·평택, 충청도 진천, 천안 지역 천주교회의 모본당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동시에 교육사업과 사회활동을 통해 한국사회 및 안성지역에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이러한 유구한 신앙의 전통과 역사를 바탕으로 안성본당은 2020년 본당 설정 120주년을 계기로 삼아 본당의 역사를 재조명하기 위해 본당 관련 자료들을 모아 다시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이에 안성본당과 수원교회사연구소는 공동으로 안성자료집을 편찬하기로 하고, 현재 남아 있는 자료를 바탕으로 『안성본당 자료집』과 『공베르 안토니오 신부 자료집』을 간행하게 되었습니다. (…)
두 책의 자료집을 바탕으로 안성본당과 공베르 안토니오 신부에 대한 심도 깊은 연구가 축적되고, 신앙선조들의 얼과 땀이 서린 안성 지역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깊어지기를 바랍니다.

▣ ‘안성 자료집’(전 2책) 목차 소개
△ 제1책 ‘안성본당 자료집’의 목차
Ⅰ. 안성본당 약사(略史)와 수록 자료 소개
  1. 안성본당 약사 - 안성 천주교 공동체와 본당의 역사
  2. 수록 자료 소개
Ⅱ. 교회 안팎의 자료
  1. 본당 설정 이전 안성 천주교 공동체 - 신자들의 증언과 기록
  2. 선교사제들의 기록 자료
  3. 교회언론 자료
  4. 윤정중의 ‘안성천주교회사’
  5. 교회 밖 자료
Ⅲ. 교세통계표 자료
  1. 본당 설정 이전 안성 지역 공소(1884~1900)
  2. 안성본당 설정 이후 공소별 통계(1900~1936)
  3. 본당별 교세통계(1937~현재)
Ⅳ. 안성본당 도표 자료
  1. 안성본당 연표(1884~현재)
  2. 안성본당 관할공소 명단(1901~1936)
  3. 안성본당 신자 수 도표(1901~2022)
  4. 안성본당 성직자·수도자(1900~현재)
Ⅴ. 소장 유물 자료 목록 자료
  1. 천주교 역사자료(서적·문서)
  2. 천주교 미술 - ‘소장유물 조사보고서’ 목록(2015년 작성)
  3. 전례 기물 및 교회물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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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책 ‘공베르 안토니오 신부 자료집’의 목차
Ⅰ. 사진과 지도로 보는 공베르 안토니오 신부의 생애와 신앙
Ⅱ. 약전과 자료 해제
  1. 공베르 안토니오 신부 약전
  2. 수록 자료 해제
Ⅲ. 공베르 신부가 작성한 자료
  1. 사목 서한 및 연말보고서
  2. 『전교회 연보』 게재 원고 (1908년, 1912년)
  3. 배정기 (판공 시기 공소 방문)
Ⅳ. 다른 사람들이 작성한 자료
  1. 선교사제들의 기록 자료
  2. 언론 기사 자료
  3. 피납과 선종 관련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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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새로 간행한 ‘안성 자료집’(전 2책)을 소개했습니다. 제1책 『안성본당 자료집』과 제2책『공베르 안토니오 신부 자료집』에 대해 더 궁금하신 분들은 안성성당에 문의(031-672-0701)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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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교사제 영입 과정에 참여한 ‘임성실 베드로’와 관련하여 추가 확인한 자료를 소개합니다
[전거] 블랑 신부가 1878년 7월 7일과 27일 거창 개화동에서 리델 주교에게 보낸 서한(A-MEP, Vol.580, f.377)

리델 주교의 석방[중국으로 추방] 소식이 알려진 1878년 7월 당시 블랑 신부는 거창 개화동에 계속 머
물러 있었는데, 27일경 거창까지 내려온 임성실과 김성흠을 통해 중국과 조선 북부에 있는 동료 선교사제들이 보낸 서한을 받았습니다. 이때까지 임성실과 김성흠이 교회의 연락원으로 계속 활동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이 중국 차쿠까지 직접 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중국 차쿠의 선교사제와 블랑 신부와의 서신 교환에 일정한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바로잡습니다
2023년 9월호(통권 100호) ‘19세기 천주교회 목판인쇄소 운영과 서적 유통 (10)’ 3면에 “정동 인쇄소에서는 1886년 8월부터 인쇄 작업에 들어가 『성교요리문답』과 『성상경』, … 간행했다”고 나옵니다. 여기서 『성교요리문답』은 ‘『천주성교십이단』(12개의 주요 기도문)’의 오류입니다.



▣ 『천주성교십이단』(줄여서 ‘십이단’이라고 함)의 간행 과정
‘십이단’은 천주교의 주요 기도문 12개를 모은 것인데, 언제 책자 형태로 편집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제2대 조선대목구장 앵베르 주교가 주요 기도문을 한글로 번역하게 했을 때 12개의 기도문을 발췌하여 ‘십이단’으로 엮었다고 보는 것이 통설입니다[조광, 「믿음을 향한 첫걸음-천주성교 십이단-」, 『경향잡지』 1514호(1994.5), 48~49쪽]. 하지만 절두산순교성지 박물관에 소장된 『성교십이단』이 가장 초기의 번역 형태인 현토(懸吐, 이두) 방식인 것으로 보아 1838년 앵베르 주교의 한글 번역 이전에 번역·편집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성래, 「한국 천주교회의 한글 번역 활동」, 『한국 천주교회사의 성찰』, 한국교회사연구소, 2000, 528쪽]. 책자의 편찬 연도는 확정할 수 없지만, 신자들의 증언 기록[병인치명사적·병인시복재판록]에 따르면 1866년(병인) 천주교 박해 이전에 신자들이 『십이단』의 기도문을 외웠고 책을 필사해서 배포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876년 선교사제가 조선에 재입국한 이후 우선적으로 『십이단』을 필사해서 신자들에게 나눠주었다는 것이 블랑 신부의 서한에서도 확인됩니다[1876년 10월 3일에 페롱 신부에게 보낸 서한]. 이후 블랑 주교는 인쇄소를 운영하면서 천주교서적을 간행했는데, 『텬쥬셩교십이단(천주성교십이단)』도 주교 재직 시기에 인쇄·배포되었습니다. 쿠랑(Courant)의『Bibliographie coréenne(한국서지)』 3권(323쪽)에는 1889년에 블랑 주교 감준 아래 간행되었다고 나오지만, 실물은 확인되지 않습니다. 1887년 블랑 주교가 편찬한 사목지침서인 『조선교회 관례집』에 성인이 세례를 받기 위해서는 3개의 교리문답[세례·성체·고해]과 함께 ‘십이단’을 배워야 한다고 규정[한윤식·박신영 편역, 『조선교회 관례집』, 토비트, 2013, 31~32쪽]되어 있어 이 시기쯤에 간행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합니다[조광, 앞의 글, 49쪽]. 하지만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간행본은 1896년 뮈텔 주교가 감준한 『텬쥬셩교십이단』 중간본[연세대학교 국학자료실·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소장]이었습니다.
그런데 블랑 주교가 1886년 9월 1일 포교성에 보낸 서한[『블랑(Blanc, 白圭三) 문서』, 한국교회사연구소, 1992, 353쪽]에서 “예비신자를 위한 수천 권의 기도서를 인쇄”했다고 나옵니다. 여기서 기도서는 4권 분량의 『천주성교공과』가 아니라 1권 12장 분량의 얇은 『천주성교십이단』을 가리킨다고 봐야 합니다. 이처럼 1886년 서울 정동의 ‘성서활판소’에서 ‘십이단’ 책을 대량으로 간행하고 난 다음에 1887년 『조선교회 관례집』에서 ‘십이단’ 공부를 세례받기 위한 의무 사항으로 규정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따라서 쿠랑의 ‘1889년 간행’ 서술은 ‘1886년 간행’의 오기로 보입니다. 1886년판 ‘십이단’은 아직 국내에서 확인되지 않았지만, 현재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에 소장된 『텬쥬셩교십이단』이 1886년 간행된 초판본으로 보입니다. 아래의 전교회 도서관 목록에서 서지 사항을 확인했습니다. 
https://bibliotheque.mepasie.org/cgi-bin/koha/opac-detail.pl?biblionumber=38234&query_desc=callnum%2Cwrdl%3A%20COR
이와 같이 ‘십이단’은 1886년 블랑 주교 감준으로 서울 정동 ‘성서활판소’에서 활판본으로 수천 권 간행되었고, 이후 1896년, 1902년, 1911년, 1931년, 1935년, 1937년에 중간되었습니다.[한국교회사연구소 도서관 목록 참조] 앞으로 ‘십이단’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가 더 진척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석원 프란치스코(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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